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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흉내 내는 국토부, 스티븐슨에게 배워라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철도의 핵심은 통합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21 오전 7:42:18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 어디쯤 오는지 배송 추적을 한다. 부산의 호텔이 특가 이벤트를 벌이는 정보를 확인하고는 전망 좋은 방으로 예약하고 KTX 열차표를 알아본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 세계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46억 년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인류가 현대 문명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12월 31일 자정 2초 전이라고 한다. 상품이라는 매개체로 유지되는 현대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셈이다. 굳이 이렇게 비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대는 시작한 지 약 400년 남짓이고 본격화한 지 불과 20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이 시대는 산업혁명이라는 빅뱅의 출발점 이후 빛의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그 대폭발의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본주의 시대의 최대 주주는 서구 문명이라고 부르는 유럽과 미국이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였던 유럽은 새로 열리는 시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근대 자본주의는 주류인 유럽과 미국의 1세계와 그 외의 세계로 고착화되었는데, 이 출발점은 대항해 시대라고도 불리는 15세기부터 불붙은 서구 주도의 지리적 확장이었다. 북아메리카라는 천혜의 대륙을 차지하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식민화를 통해 쌓은 부는 마침 불붙기 시작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결합해 이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를 잉태했다. 무엇인가 계속 꿈틀거리는 세상,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계 문명이 비로소 시작되는 시공간이었다.

이제 기원적인 모습이 아니라 현대 철도의 모습을 갖게 된 출발점으로 가서 본격적인 철도의 이야기를 할 시점이 왔다. 철도의 시작을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조지 스티븐슨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이 연재는 힘차게 달릴 수 없다. 철도가 탄생하고 자본주의가 발산하던 1800년대 영국으로 달려가 보자.

혁명적인 발명, 증기기관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촉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증기기관 개발은 16세기부터 꾸준히 시도되었다. 1705년 영국에서 토마스 뉴커먼이 그동안의 증기기관을 개량해 대기압식 상업용 증기기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산업적이며 상업적 역할을 수행한 증기기관의 첫 사례다. 토마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전국의 광산에 보급되어 지하 갱도에서 석탄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한 발전된 증기기관을 만들어 특허를 내고 상업 운전에 들어가자 증기기관의 생산성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영국은 운이 좋게도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탄 광산을 갖고 있었고, 석탄 산업은 대처가 집권한 1980년대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증기기관 개량은 이전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석탄을 채굴하게 했다. 신세계를 여는 강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기구를 사용한다고 해도 동물이나 인간의 근육을 동력원으로 하는 힘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힘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미약하다. 기계의 힘을 생각할 때면 오래전 군 생활 중의 일이 생각나곤 한다. ‘쫄병’ 시절 산 중턱의 테니스장을 정비하고 배수로를 파는 공사에 차출됐다. 아직 녹지도 않은 땅에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삽질을 하면서 흙과 돌을 파내기를 1주일이나 했지만, 공사는 눈에 띄게 진척되지 않았다. 어느 날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러 온 대대장이 인상을 쓴 채 돌아가고 나서 굴삭기와 트럭 한 대가 올라왔다. 수십 명의 병력이 1주일 넘게 씨름했던 일이, 중장비 두 대가 등장해서 서너 시간 뚝딱거리니 깔끔하게 정리됐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노예가 했던 노동력과 별 차이 없는 자연력으로 삽질을 해댔던 1주일이 넘는 시간이 기계의 힘으로 단 몇 시간 만에 보상됐다. 이런 엄청난 기계의 힘은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증기기관은 자연력을 대체하면서 산업 전반 곳곳에 퍼져나갔고 그만큼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신했다. 증기의 시대로 표현되는 현대 물질 문명의 출입구가 열렸다.

철도의 아버지가 된 천재 소년, 조지 스티븐슨 

영국의 뉴캐슬에서 서쪽으로 13킬로미터 정도 가면 와일램이라는 탄광촌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빈털터리가 된 부모를 따라 잉글랜드로 건너온 로버트 스티븐슨은 이 와일램의 탄광촌에 일자리를 얻었다. 증기기관 화부로 취직한 로버트 스티븐슨은 성실했지만, 주급 12실링으로는 아내와 여섯 명의 자식을 키워낼 방도가 없었다. 당시 대다수 영국 노동자 가족들이 그랬듯 로버트 스티븐슨의 둘째 아들 조지 스티븐슨은 철이 들기도 전에 가난이라는 굴레를 짊어져야 했다. 조지 스티븐슨이 살던 집 근처에는 화물 마차가 끄는 트램로드가 있었는데 동생들이 이 트램로드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조지 스티븐슨의 첫 번째 임무였다. 조지는 소년이 되면서 집안 경제에 도움되는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형과 함께 석탄 속에서 잡석과 불순물을 골라내며 일당 6펜스를 받았고 석탄마차를 운전할 정도가 되었을 때는 8펜스의 일당을 받았다. 조지의 가족들은 탄광이 폐쇄되면 새로운 탄광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전전하면서 생활을 유지했다. 중학교 2학년 나이인 열네 살에 일당 1실링의 화부 조수로 채용된 조지는 증기기관을 움직이는 기관사가 되는 첫발을 디디게 된다. 이때만 해도 조지 스티븐슨이 영국과 세계를 놀라게 할 철도의 아버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양이나 소떼를 몰고 목초지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처럼 여기저기를 옮기며 살았다. 정착한 지역 탄광의 석탄 매장량이 동이 나면 새로운 탄광의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조지 스티븐슨의 가족들도 와일램 탄광, 듀얼리 번 탄광, 미드밀 위닌 탄광, 뉴번 탄광, 워터 로 탄광을 전전하며 생활해야 했다.

새로 개장한 워터 로(Water-row) 탄광에 기관사로 채용된 조지 스티븐슨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탄광에서 잔뼈가 굵은 스티븐슨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보수 면에서도 이전의 잡석을 골라내는 잡역부나 증기기관의 화부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스티븐슨의 가계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조지 스티븐슨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기관사가 된 이유는 어려서부터 워낙 기계를 다루기 좋아했고 탄광에서 증기기관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계속 지켜 볼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17세 소년 기관사는 탄갱 밑바닥부터 양수기가 제대로 물을 빨아들이는지, 증기기관이 고장 나지는 않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했다. 당시 탄광에서 기관사의 별명은 “구멍 막는 사람”이었는데 탄갱의 수위가 낮아져 흡수관이 대기 중에 노출되면 흡입이 되지 않으므로 기관사는 흡수구를 막아 물이 잘 빨려 올라가도록 수시로 탄갱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조지 스티븐슨은 증기기관이란 동력 장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작업이 중단되거나 쉬는 시간에는 부품을 일일이 분해해서 닦거나 작동 원리들에 대해 고민했다. 이 덕분에 조지는 증기기관의 구조와 작동 방법에 대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었고 심각한 고장조차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주변의 동료들이나 탄갱의 노동자들로부터 대단하다는 칭송을 받은 것은 물론 고용주들도 문제가 없도록 탄갱을 유지시키는 스티븐슨을 신뢰하게 된다.

기관사가 된 후 증기기관에 대한 전문가로 거듭나고 소박하나마 집안이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자 18세의 조지 스티븐슨은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에 도전한다. 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쉬는 시간이면 온 세계의 신기한 일들이 담겨 있는 신문을 읽어 주는 사람 주위에 둘러앉아 토끼처럼 귀를 쫑긋거리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스티븐슨은 기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자면 글을 배워야만 했다. 스티븐슨은 1주일에 세 번, 하루 1펜스라는 적지 않은 돈을 수업료로 내며 야간 글 읽기, 쓰기 학원을 다녔다. 배움에 굶주렸던 스티븐슨은 순식간에 읽기를 깨우치고 드디어 자기 손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감격을 맛본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배움의 맛을 알아버린 스티븐슨은 수학을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앤드루 로버트슨이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교사가 연 야학에 입학해 수학을 배웠다. 저녁마다 앤드루 선생을 찾아가 문제풀이 숙제를 검사받고 새로운 숙제를 받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스티븐슨은 배움이란 쾌락에 빠져 버렸고 이후 마른 솜처럼 다양한 학문, 특히 설계나 제작 등 기술 분야를 흡수하여 전문가로 거듭났다.

조지 스티븐슨이 처음으로 기관차를 만들어 시험 운행을 한 때는 1814년 7월 25일이었다. 킬링워스의 마차용 선로 위에 30톤의 화물을 실은 8량의 화차를 연결하여 시속 6.5km/h 속도로 오르막길을 올랐다. 조지 스티븐슨이 기관차 개발에 매달리기 전에 이미 여러 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증기기관을 이용한 동력차를 만들었다. 특히 리처드 트레비딕은 1802년에 증기차에 대한 특허를 따내기도 했고 1804년에는 사우스웨일스의 머시어티드빌 선로에서 시험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무거운 증기기관을 장착한 기관차의 무게 때문이었다. 나무에 주철을 덧대거나 강도가 약한 주철로 만든 레일이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고 훼손됐다. 조지 스티븐슨이 어린 시절 살았던 와일램의 탄광을 소유했던 블랙킷은 1811년경 트레비딕에게 석탄 운반용 기관을 주문했다. 블랙킷은 기관차를 이용한 석탄 운반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는데, 그러다 와일램의 선로 위에서 시험 운전을 막 시작한 증기기관차가 폭발해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이처럼 영국 곳곳에서 마차를 대신해 석탄을 운반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진 장치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 중에 가장 끈질기고 현명했던 사람이 바로 조지 스티븐슨이었다.

마차를 이기는 증기기관의 탄생 

이 당시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실용화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극복 대상은 마차였다. 최소한 말을 이용한 화물 수송 능력보다는 우월한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스티븐슨이 킬링워스에서 시험한 기관차도 말의 능력과 비교해서 나은 점이 없었다. 일단 속도 면에서 말보다 빨라야 하는데 증기기관의 획기적 개량 없이는 시속 5킬로미터의 평균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기관차 제작, 유지 비용이 말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훨씬 이득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스티븐슨은 집요하게 기관차의 성능을 개량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과 비슷하거나 말보다 조금 빠른 기관의 성능으로는 기관차를 만들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스티븐슨은 노력 끝에 결국 증기기관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곧바로 내보냈던 방식을 고쳐서 연통을 이용한 증기 분사 방식을 적용했다. 지속적으로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축과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처음의 증기기관차 대신 연통을 장착한 증기기관은 연통의 공기를 대기 중으로 수직으로 배출하면서 화실과 연통 내의 상승 기류를 만들어 주어 동력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티븐슨은 이전까지의 증기기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기관차를 만들었다. 이후 만들어진 모든 개량된 증기기관차는 이때 만들어진 기관차의 모습을 원형으로 간직하고 있다. 잠시 제대로 된 기관차의 모습을 갖게 된 이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자.

개량된 기관차는 화덕에서 나무와 석탄으로 데운 고압 증기의 작용으로 실린더를 움직이는데, 기존의 것들과 달리 이 실린더와 바퀴를 직접적으로 연결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또 커넥팅로드라고 불리는 수평의 지지대를 연결해서 모든 바퀴가 다 동력을 전달받아 힘을 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대기로 흘려보냈던 증기를 연통을 이용해 분사시키는 방식으로 연료의 연소를 활성화했다. 드디어 제대로 달릴 수 있는 기계장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1825년 9월 27일. 드디어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정식 철도가 운행된다. 영국 중동부 스톡턴과 달링턴 구간에서 조지 스티븐슨이 설계, 제작한 기관차 로코모션 1호가 첫 기적을 울렸다. 스티븐슨이 직접 기관차를 몰고 구경 나온 인파 속으로 등장했다. 이 최초의 열차에는 석탄과 밀가루를 가득 실은 6량의 화물차, 스탁턴-달링턴 철도 회사의 간부들과 친구들을 가득 채운 객차, 승객이 앉을 임시 좌석을 고정시킨 21량의 객차, 6량의 석탄차가 연결됐다. 모두 38량의 객차와 화차를 연결한 기관차가 실험용 지원자로 불린 45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지인 브러셀턴 인클라인에서 65분 만에 14킬로미터 떨어진 달링턴에 도착했다. 시속 15km 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속도지만 기관차 하나가 수백 마리의 말을 동원해야 끌 수 있는 무게를 운송하는 것은 당시에는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열차가 도착하는 달링턴에는 이 진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모인 4만 명의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새 시대를 축하했다.

▲ 최초의 철도인 스탁턴-달링턴 구간을 운행했던 로코모션호. ⓒ위키백과

스티븐슨 vs 트레비딕…엇갈린 ‘철도 천재’의 운명 

조지 스티븐슨이 철도의 최고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 이유는 오직 그만이 철도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관차를 개발하면서 스티븐슨은 기관차만이 아니라 기관차가 달려야 하는 선로에 눈을 돌렸다. 스티븐슨에 앞서 트레비딕이 만들었던 기관차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짐을 싣고 속도도 낼 수 있었으나 시험 운행만 마치고 창고에 버려졌다가 광산으로 옮겨져 고정식 배수장치로 사용됐다. 기관차의 무게로 인해 주철 재질의 레일이 버티지 못하고 손상되어 제대로 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차를 선로에 올려 달리게 하겠다는 것은 트레비딕의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트레비딕이 만든 최초의 증기기관차는 당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4륜 마차를 본떠 만들어졌다. 도로용으로 만들어졌으니 증기기관 자동차가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트레비딕의 용”이라고 불렸던 이 증기차는 특유의 파괴력과 굉음으로 남의 집 정원울타리를 부순다든지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영국의 열악한 도로 사정이 “트레비딕의 용”을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트레비딕은 당시 석탄 수송용 마차가 운행되는 선로 위에 자신의 증기차를 달리게 할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트레비딕은 최초로 도로를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만들고 이어서 선로 위를 달리는 기관차를 도입했지만 철도의 탄생에 제대로 기여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으로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냈지만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파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끈질긴 집념의 사나이 조지 스티븐슨의 진가가 나타난다. 스티븐슨은 기관차가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로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선로라는 것은 단순히 강도만 우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진성과 평탄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현대 철도 기술에서 선로 설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간파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스티븐슨은 선로와 기관차를 하나의 기계로 보았다. 기관차와 레일은 남편과 아내 같은 관계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하고 다녔다.

철도의 특성상 달리는 열차와 선로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이 관계가 훼손되면 기차는 트레비딕의 초기 증기기관차가 그랬듯이 제대로 운행할 수 없다. 볼프강 쉬벨브시는 <철도 여행의 역사>에서 교통로와 그 위를 달리는 수단이 일체화된 것이 새롭게 등장한 철도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말한다. 볼프강 쉬벨브시가 소개한 기욤 텔 푸생도 “철도를 구성하는 두 부분(철도가 달리는 표면과 동력) 사이에 조화가 항상 존재하기 위해서는, 한쪽이 개선되면 다른 한쪽도 그에 상응하여 더 완벽해질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만 한다”고 정확히 철도의 특성을 지적했다. 기욤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이 1839년으로 철도가 유럽에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때였다.

대처 정부, 철도 ‘통합 시스템’ 파괴…열차 사고 빈발 

특히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는 열차와 선로의 관계는 스티븐슨이 살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로도 더 밀접해졌다. 선로를 이루는 장치들(레일, 신호 체계, 전차선)이 열차와 지속적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철도에서는 시설 부분을 하부라고 하고 운영 부분을 상부라고 한다. 스티븐슨은 철도 시스템의 완결은 이 하부와 상부가 통합된 일체형이어야 함을 간파했다. 이런 상하 통합 시스템이 무너진 결과는 참담하게도 스티븐슨의 모국 영국이 생생하게 보여줬다.

철의 여인 대처는 작은 정부, 무한 경쟁, 민영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었다. 위대한 대처리즘은 마침내 철도 민영화라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대처리즘의 철학은 모든 정책을 추구할 때 사회를 제거한 뒤 추진했다. 사실 이보다 더 편리한 방식은 없다. 사회를 생각하다 보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 사회를 제거하는 순간 동물만 남게 되었고 세상은 이런 동물들이 먹고 먹히는 정글이 되었다. 이윤과 수치적 성장이 보여주는 성과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했다. 영국 철도의 민영화는 상부와 하부를 나누고 또 열차 운영을 담당하는 상부를 수십 개로 나눴다. 한국의 국토교통부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스티븐슨이 남편과 아내 같아야 한다고 말했던 철도 시스템이 분리되자 결별한 부부는 원수가 되었다. 열차 안전을 위해 열차 자동 보호 장치를 설치하는 데 20억 파운드의 거금이 든다는 이유로 하부 구조인 시설 부분을 담당하는 회사의 존 에드먼즈 사장은 3억3000파운드만 들여 열차 보호 경고 장치만 설치했다. 극히 일부 노선에만 고가의 자동 보호 장치가 설치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레이트 웨스턴 사가 운행하는 런던 서부사우스올이라는 곳이었다. 더 황당한 일은 자동 보호 장치가 설치된 이 노선에서 1997년 급행열차와 화물열차의 충돌로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로에서 보내주는 자동 보호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들이 열차에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9년 31명이 사망한 래드브로크 그로브 사고도 자동 보호 장치가 설치된 고속 구간에서 벌어졌다. 이 노선을 운행하는 템스 사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열차에 선로에서 보내주는 열차 자동 보호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패딩턴역 사고라고도 불리는 래드브로크 그로브 사고 당시 충돌 직전 열차의 속도는 시속 128km가 넘었다. 민영화된 영국의 많은 철도 회사들의 대변인들이 시민들과 의원들의 항의나 질문에 대답하는 단골 멘트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비용 문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한국의 정부 관료들의 “철도 적자를 생각해야만 합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 영국 철도 민영화 후 3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던 패딩턴역의 모습. ⓒ박흥수

거꾸로 달리는 한국 철도 

현대 철도에서 열차 충돌이나 탈선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철도라고 주장하는 한국 철도에서조차 이런 사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세 건의 대형 사고를 포함해 여섯 번의 사고로 56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민영화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철도의 시설과 운영은 한 몸이라는 스티븐슨의 철학을 팽개치고 경쟁을 도입해 벌어진 일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영국 철도가 도입한 ‘경쟁을 통한 효율화’란 방식이 한국 철도의 앞날이라는 것이다. 이 정신에 입각해 한국 철도에서는 지난 2004년 시설과 운영이 분리되었고 지금은 운영 부분에도 경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수서발 고속선 개통을 빌미로 추진되었던 KTX 민영화가 벽에 부딪히자, 공기업과 민간의 지분이 들어간 고속철도 운영사를 설립하겠다는 안이 그것이다. 프랑스가 분리했던 시설과 운영을 통합하면서 그동안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한국 철도는 거꾸로 달려가고 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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